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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2011 <만추> 리뷰, 천추의 한(恨)이 되다

 


만추 (2011)

Late Autumn 
6.7
감독
김태용
출연
탕웨이, 현빈, 김준성, 김서라, 박미현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미국, 홍콩 | 113 분 | 201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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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의 한(恨)이 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가을이라는 계절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서인 한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애틀은 안개가 많이 끼어있는 도시로 유명합니다. 때문에 실제로도 자살률도 높다고 합니다. 이런 면들이 영화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집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애나의 한(恨)입니다. 이것은 영화의 오프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도로 위를 하염없이 걷던 애나는 갑자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돌아왔던 길을 숨가쁘게 달립니다. 그리고는 살인의 증거들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먹어버립니다. 이 장면은 무섭기도 하고 여자의 절박함까지 느껴집니다.

 

 

오프닝의 장면은 영화의 중반쯤 가서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애나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오빠의 친구와 사랑에 빠졌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랑했던 남자는 떠나고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게 됐습니다. 결혼하게 된 사람은 나약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애나에게는 힘든시간이었죠. 그러던 중 갑자기 오빠의 친구가 돌아와 떠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남편이 알아차려 죽일듯이 애나를 때렸습니다. 이 때, 애나는 정신을 잃었고 오프닝과 같은 장면이 된거죠. 여기서 한의 제공자는 그 오빠의 친구, 즉 애나가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을 가진 애나는 꽤 편집증적입니다. 일반인이라면 감옥에서 하지 못했던 것을 나와서 다 해보고 싶을텐데, 예쁜 옷들도 다 버려버리고 처음 입었던 옷만으로 버팁니다. 또 돈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한을 해소해줄 것을 찾습니다. 여행을 가려고 했던 티켓창구의 모습이 그렇고 훈과 잠자리하려고 했던 것이 이런 한을 해소해줄 것을 찾는 과정이죠. 그러나 애나는 그것의 해소법을 이런 것들에서는 찾지 못합니다.

 

 

또 현빈이 연기한 훈은 어떤 미스테리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맥락에 따라서 신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중간에 보면 애나가 훈에게 자신이 처한 처지를 설명하는 두 사람의 대화로 보이는 장면이 길게 나오는데, 이 때 애나는 중국어로 얘기하고 훈은 알아듣는 것 같이 "하오"라고 대답합니다. 또 버스에서 돈을 빌릴 때 애나가 예스라고 써있다고도 합니다. 따라서 훈의 역할은 우리나라 고전에서 볼 수 있는 한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이야기로, 옥자는 외국인과의 결혼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그 한을 훈이 풀어주려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가 끝으로 향하며, 애나의 한을 해소해주는 것은 훈과의 사랑입니다. 이 두 남녀가 봤던 범버카 위의 연극은 이전의 우리나라 민중이 어떤 놀이들을 통해 자신을 대입하고 한을 풀었던 과정과 비슷합니다. 애나도 이 놀이에 동참하게 되고 자신이 갖고 있는 한의 근원이 누군가로부터의 용서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훈에게 말해줍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애나는 꿈 속에서 훈과 격렬한 키스를 합니다. 그리고는 문뜩 꿈에서 깨어나 커피 두 잔을 사들고 처음으로 훈을 찾습니다. 이것으로 애나의 한이 풀립니다. 그리곤 멋있는 엔딩장면으로 <만추>는 끝납니다.

 

 

아쉬운 점은 <심청전>에서 뺑덕의 익살이 담겨있듯이, 해학이 느껴지는 장면이 없다는 겁니다. 훈이 여러 시도를 하지만 관객입장으로 보면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관객에게 무겁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추>가 갖는 의미는 큽니다. 지금 상영되는 영화들을 보면 "한국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많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추>라는 영화가 갖는 의미는 다른 영화들과 좀 다릅니다. 또한 <만추>는 기존의 '한'이 가지는 비극적인 결말을 휴머니즘적으로 풀어 해결했기 때문에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