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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꿈과 현실의 대조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3)

Nobody’s daughter Haewon 
7.2
감독
홍상수
출연
정은채, 이선균, 김자옥, 기주봉, 김의성
정보
드라마 | 한국 | 90 분 | 201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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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봤습니다. 영화는 보면서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많았습니다. 먼저 기억과 꿈을 이용하는데, 같은 것을 도구로 삼았던 다른 영화들보다 더 현실적이라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아 작품이라는 점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또 롱테이크 기법 등 촬영 기법이 눈에 띄게 특이합니다.

 

 

 본격적으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먼저 해원이 '어제'의 일기를 쓰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영화에서 종종 뭔가 논리적이지 않은 대화가 오고가는데, 그 이유는 해원이 '어제'의 일기를 쓰기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식당에 먼저 도착해 잠깐 잠이 들었노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꿈'이 처음 등장합니다. 처음 꿈에서는 해원이 만나고 싶었던 제인 버킨을 만납니다. 해원의 꿈인만큼 그녀가 듣고싶은 영어를 잘했다거나 제인 버킨의 딸과 닮았다거나 하는 자신이 원하는 말을 듣는 일이 벌어집니다.

 

 잠에서 깨고 난 현실에서 해원은 엄마와 시간을 보냅니다. 엄마와 어떤 곳(공원, 도서관, 학교)에 들어가보려 하는데 엄마는 입구에서 보려고만 합니다. 여기서 현실을 안타까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직로를 나와 한 카페 앞에 멈춰 쌓여있는 책을 봅니다. 여기서 해원은 책을 사지 않는데 그 이유를 '집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서'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넌지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기억과 경험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엄마라는 존재가 버젓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제인 버킨을 만나는 꿈과 엄마를 만나는 현실의 차이에서 생각해봤습니다. 꿈에서 해원이 만나고 싶어한 제인 버킨은 배우인 딸을 두고 있는데, 그녀의 딸 또한 훌륭한 배우, 진짜 예술가라고 표현합니다. 해원은 그녀의 딸처럼 될 수 있다면 영혼까지 팔거라고 말하죠. 그러나 엄마와 만났던 해원의 현실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누구의 딸도 아닌"은 현실에서 해원의 부족함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제인 버킨과 딸처럼 엄마가 딸을 돌봐주고 자랑스러워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엄마와 관련한 현실과 꿈의 비교가 끝나고 이 교수가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엄마와 헤어진 것과 이어 현실부터 보여줍니다. 이 교수와의 관계는 딸로서 해원의 현실과 마찬가지로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불륜관계이기 때문이죠. 또한 이 교수는 해원이 원하는 바와 여러 가지 면에서 꽤 먼 사람입니다. 술자리에서 대화를 보면, 이 교수는 자신이 제작한 영화에서 모순을 가지고 있고, 거짓말을 만들어내며, 진실하게 말하는 용기도 없습니다. 이런 그의 대칭점으로 꿈 속에서는 또 다른 교수가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은 미국에서 교수를 하며, 대통령을 만났고 유명한 영화감독과 통화를 하고 이혼을 진실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또 술자리에서는 해원에 대해 혼혈이라는 것, 부자라는 것, 1년이나 사귄 남자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실히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한산성에서 갈등을 빚게 됩니다. 이런 것을 보고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 떠오릅니다. 이 교수에게 사랑하는 해원이 우선하는 게 아니라 해원에 대한 소문이 우선인 모습이 이를 떠올리게 하죠. 담배에 대한 생각이라던가 어제를 쓰는 일기, 책에 대한 기억은 이런 이론과 맥을 같이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영화의 종반으로 오면, 해원은 현실에서 이 교수와 싸웠을 때 가지 못했던 남한산성의 길을 혼자서 가봅니다. 남한산성은 현실에서 이 교수가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간 곳이고 해원과 교수가 다름을 확인하고 갈등을 겪는 곳입니다. 마치 그 둘의 연애사와 같습니다. 그런 길을 해원이 혼자 가는 것은 헤어지는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교수의 진실하고 용기있는 모습은 해원과 헤어지는 것을 통해 보여집니다. 꿈이지만 말이죠.

 

 여태까지 해원의 꿈 속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나오지만 그 누구도 해원을 '위로'해주지는 않습니다. 분명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할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해원은 꿈 속에서 그녀 자신한테하는 위로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꿈에서 깬 해원의 대사는 "꿈에 본 아저씨는 전에 봤던 착한 아저씨인 것 같았다"이죠. 인물들 중에서 그녀의 기억 속에 착한 아저씨는 우연히 "좋은 날입니다."라고 해줬던 아저씨입니다. 아저씨가 주는 막걸리로 위로를 받고 아직 남한산성을 내려가지 않은 울고있는 교수를 다독입니다. 이로써 영화는 앞으로 둘의 관계를 관객의 상상에 맡겨버리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장센(시각적 요소의 배열)이 기억에 남습니다. 해원의 패션이 뒤쳐지는 것과 멈춰서 대화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해원은 마치 20년 전의 스타일처럼 나팔바지와 컨버스, 이상한 코트를 고집합니다. 홍상수 감독이 이런 것에 신경을 안써서 일수도 있지만 상투성을 경계하는 감독의 스타일에 기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인터뷰에서 홍상수 감독은 "멋있다는 건 이전의 본 이미지가 환기되어 멋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고, 생생한 요소들이 힘을 발휘하는데 막이 덮이는 느낌"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따라서 해원의 이상한 패션은 해원과 교수의 관계에서 관객이 해원이 예쁘게 보여서 오판을 하는 것을 막기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는 팬(Pan)과 틸트(Tilt)라는 기본적인 카메라 움직임(고정축을 갖는)에 의해서만 촬영되었습니다. 때문에 배우들이 움직이면서 대화를 하게 되면 카메라가 고정된 축을 가지기 힘들기에 가능한 멈춰서 이야기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움직임을 영화 내내 고수하는 이유는 마찬가지로 상투성을 경계해서라고 추측해봅니다.

 

 이런 일상적인 소재와 사실주의적인 표현으로 어려운 주제를 한정적이지 않게 던져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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