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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기, 정리, 다짐, 선언하기

30살, 되돌아보기

 

20~21 재수

 

10년전에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재수를 했다. 1년동안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선택이었는지, 재수학원 선생님들의 칭찬 덕분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게 됐다. 

 

돌아켜보면 어떻게 아침 7시에 나와서 22시까지 공부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효율적인 공부였지만, 누군가보다 인내심은 좋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이때 얻은 점은 부모님에게 '미안함 + 인내심'이다.

 

 

21~25 대학교

 

재수가 끝나고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2가지였다. 한등급 높은 영문학과 혹은 한등급 낮은 경제학과였다. 아버지는 계속되는 취업난에 공무원이 될거라 예상했고, 그때 도움이 되도록 영문학과를 가라고 권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결정이었다. 아버지는 '영문학과'가 어떤걸 배우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공무원이 되는데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겠지만, 오히려 좋아하는 전공을 '공부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어떨까싶다. 배운점은 '누구에게 조언을 들어야 하는가,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가'이다.

 

영문학과엔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 교환학생을 다녀온 친구들이 있다. 나는 과감하지 못했고, 새로운 모험을 떠나지 못했다. 현실에 안주했다. 여기서 배운점은 '실행'이다. 뭐든 하면 바뀐다. 미래에 좋은 영향이 생긴다.

 

1학년이 지나자 군대에 가는 친구들이 생겼다. 나는 군대가 싫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나의 답변은 '자유로운 선택'이다. 그런데 군대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이었다. 어쩌면 부모님에 의한 학과선택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 내 선택은 ROTC였다. 내가 선택할 수 있었고, 일반 병사보다 자유로운 시간이 좀 더 있었다.

 

그리고 경제학과를 복수전공했다. 영문학도 재미는 있었다. 책을 읽고 내 생각을 쓰는점은 지금도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빼곡히 A4용지 3~4장을 써내면 교수님들은 무슨 기준으로 채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의문이 들때쯤 "정확하게 점수를 산출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사건이 있었다. 매우 실망했다. 반면에, 경제학과는 정확했다. 1+1=2마냥 정확한 답변을 요구하는 시험들이었다. 물론 경제학도 정답이 없는 학문이지만 최소한 교실 안에서는 그랬다. 재밌었고 그런 일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ROTC를 실행했고, 복수전공을 실행했다.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있게한 선택들이다. 일단 실행하면 좋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25~27 장교생활을 했다

 

장교생활은 나름 재미있었지만, 차악이었다. 정보과장이라는 직책이 주어졌다. 지휘관에게 조언을 하는 참모였다. 조언을 하려면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 입대한 놈이 20년차 이상의 대대장에게 조언을 한다니 말이 안된다. 이때 어렴풋이 안 것 같다. 남에게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걸. 최근에 박세니님 강의를 들으면서 확고해졌다. 

 

그 당시에는 훈련이 있으면 교범을 들고 새벽2~3시까지 공부했어야 했다. 지휘관께서도 그런 나에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했다. 시험을 자주 봤다. 재수시절, 대학시절보다 훨씬 많이 공부했다. 제대할때쯤엔 나도 한마디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 같이 일하던 담당관이 장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권유했다. 그에게 영문학과를 선택하게했던 아버지가 보였다.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또 후회할 결정이 있으리란걸 어렴풋이 알았다. 전역을 했다. 

 

 

27~28 식품영업

 

사회로 나와서 했던 일은 대기업 식품영업이었다. 병사로 전역한 친구들보다 오히려 일찍 취업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실행'의 중요성을 느낀다. 영업을 하면서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을 만들려 노력했다. 구매담당자에게 설명을 잘하면 더 잘팔리리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생각은 참 맞지 않았다. 가격이 큰 차이가 없는 완전경쟁 시장에서 식품이 얼마나 영양소가 다른가, 혹은 쓰임새가 다른가는 중요한 점이 아니었다. 얼마나 담당자와 친한가? 팔리지 않으면 반품은 할 수 있는가? 같이 담배를 필 수 있는가? 매주 찾아오는가? 찾아올 때 빈손으로 오지는 않는가? 이런 요소들이 더 많이 작용했다. 참 이상했고, 한편으론 혐오스러웠다. 내가 먹는 식품을 진열하는 이곳에선 맛이나 영양소, 신선함이 평가요소가 아니다. 

 

입사했을 때 나는 최악의 실적이었다. 동기 중 꼴찌였던 것 같다. 구매담당자들이 이해하기 힘들게 설명하려 했으니 그랬을 것 같다. 혐오스러운 요소들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추석 대목, 다른 친구들보다 10배를 더 팔았다. 한편으론 뿌듯했고 한편으론 생각이 많아졌다.

 

이와 별개로, 실적이 오르니 나에게 많은 거래처가 주어졌다. 처음의 2~3배 수준이었다. 거기에 가르쳐야하는 후배도 들어왔다. 후배와 함께 거래처를 돌아다니고 돌아온 저녁엔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가르쳐야 하는 사실들이 "거래처에 갈때 뭘 하는가?"와 같은 지식이었다. 이때쯤 나는 스트레스로 출근길에 쓰러졌었다.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고, 퇴사를 실행했다. 내가 원하는 '지식'을 쌓아야했다. 이왕이면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회사에선 여러 사람들이 퇴사에 대해 조언했다. 이러니 저러니 했지만, 결국 회사안의 그들은 퇴사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교훈을 얻은 적이 있으므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28~29 은행

 

직전과 달리 바로 취업하기 힘들었다. 학원도 다녔고, 몇몇 변변치 않은 노력들도 했다. 변변치 않음은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이고, 요행같은 것들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운좋게도 이런 요행들이 통해서 농협에 입사했다. 은행원으로 일하게 된 것은 부모님에게 대단한 믿음과 자부심을 줬다. 재수, 퇴사 이런 것들에 대한 미안함이 사라졌다.

 

은행일은 정말 재미있었다. 손님들이랑은 이런저런 얘기들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은행에선 내가 닿을 수 있을 것같은 부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90%는 사업으로 부자가 됐다. 그리고 이런 분들은 자유로웠다. 자식들에게 돈을 줄지 말지도 본인이 선택했다. 내가 오늘 힘들면 쉬는 것도 본인이 선택했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더 주는 것도 본인이 선택했다. 반대로, 이분들은 내가 느껴보지 못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던듯하다. 왜냐면 대부분은 은행일을 보면서 1원이 틀리는 것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월급쟁이들은 현금으로 받으면 잘줬겠거니하고 주머니 속으로 직행한다. 하지만 부자들은 아니다)

 

또, 은행일이 좋았던 점은 경제학 전공이 매우 쓸모있던 점이다. 남들보다 빨리 상품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고, 손님들이랑 경제뉴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취업 직후에 많은 사람들이 은행 실적에 대해 걱정했었다. 나는 남들보다 비교적 덜했다. 그리고 금융상품은 본질적으로는 손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구조다. 물론 업계의 잘못된 방식이 있다. 은행원 입장에서 '손님에게 좋은 상품보다는 윗선에서 원하는 수수료가 많이 되는 상품'이 팔려야 한다.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식품영업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은행일을 못하게 됐다. 농협의 구조는 위로 올라가려면 은행일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일들을 해야한다. 실적이 좋아서였을까, 퇴근을 일찍하는 막내여서 였을까. 지금도 잘모르겠지만 예상보다 일찍 다른 부서로 옮겨졌다. 또 다시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자유롭지 않았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제한이 아니었다. 충분한 설명도 없었다. 망설임없이 퇴사했다.

 

 

20대를 되돌아보며,

 

배웠던 점은 '실행하기' '설명할 수 있는 지식만들기' '내가 선택하기'다. 3가지가 있어야 좀 더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자유로움이다. 경험상 자유로운 사람들은 사업가들이다. 그래서 나는 사업을 선택하고, 실행해야 한다.

 

내가 실적으로 재능을 발휘했던 지점들은 '사람들과 만남'부분이었다. 영업도 그랬고 은행도 그랬다. 사람들과 만나기 시작하면 매출이 생겼다. 나는 소통에 재능이 있다. 여기에 경제학과와 은행 경력은 자산관리라는 분야로 이어졌다. 이 분야에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을 만들어야 한다.

 

때문에 CFP라는 자격증에 도전한다. 고객입장에서 과세에 대한 이해, 투자 방법, 금융상품 이해를 갖춘 자산관리자는 필수다. 그 이해의 정점은 CFP이다. 시험은 꼼수보다는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시험이다. 이를 갖추는게 1순위다.

 

자립을 위해 사람들과 만나는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 자청의 강의에서 배운 것들은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 광고, GDN, 유튜브이다. 번외로 브런치 작가도 있다. 이중 네이버 블로그가 가장 적합했다. 그리고, 유튜브, 브런치 순으로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이건 2순위다.

 

책읽기와 글쓰기는 사업셀럽들이 강조한 2가지다. 은행에서 만난 부자들도 나에게 해준 조언에서 '읽기'는 빠뜨리지 않았다. 재료가 된다는 자청님도 있고, 세상 흐름을 알 수 있다는 분도 있었다. 결론은 무조건 다독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단 써야 읽고 생각한 것들이 정리된다. 이건 효율적인 측면에서 그렇다. 단기적으론 시험을 잘보려고 회독을 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실전에서 써먹기 위해선 잘 써두는게 더 좋다. 실제로 기억이 휘발되지 않는다.

 

2021년 6월 31일엔 CFP자격과 네이버 블로그 일방문자수 1,000명이 되어있을거다. 여기서 월급 이상의 소득을 올리겠다. 그리고 유튜브에 도전하고 있겠다.